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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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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비판
구약 성경 강해 신약 성경 강해 조직 신학


해방신학 비판

 

 해방신학 [解放神學, theology of liberation]

 영혼과 빈곤의 구제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정치구조에서 해방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신학운동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출발하여 제3세계로 널리 퍼졌다.

 라틴아메리카는 1950년대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모델로 하는 ‘발전’ 혹은 ‘개발’이라는 이념 아래 사회·경제 발전을 통한 현대화를 추구했는데, 그것은 발전된 자본주의 세계의 경제기구들에게 지배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에 이르자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과학자들 사이에는 그러한 발전주의가 선진국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경제적 종속(從屬)을 초래했다는 논의로 발전하였다. 즉, 1960년대에 선진국의 부(富)는 배로 증가했으나, 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제3세계의 빈곤은 심화되어만 갔고, 결국 이 빈곤은 전자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또, 이같은 상황의 극복은 종전의 발전주의 모델을 통해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해방이라는 개념은 이제 그러한 발전주의에 대치되어야 하며, 새로운 의미에서 발전이라는 개념을 흡수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발전주의는 기존의 세계 경제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는 데 반해, 해방은 이것의 혁명과 이로부터의 정치·사회적 해방을 의미하며, 이 혁명과 해방이 실현되지 않고는 인류와 역사의 참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는 이와 같은 역사·사회적 문제상황의 과학적 분석이론으로서 원용되고 있다. 이같이 해방신학에 내포된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는 소련에 의해 대변되던 이른바 변증법적·형이상학적 유물론이거나 무신론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종말적 구원 또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박두해 가는 실천의 이론적 도구 내지 매체이다. 그리하여 해방신학은 앞서 말한 상황과 분석을 성서에 증언된 종말론적 구원신앙의 실천적 계기로 삼고 있다.

 

해방신학의 입장과 역사 

해방신학은 유럽의 신학 전통과 20세기 신학을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서 비판·재해석·원용하기도 한다. 해방신학자들은 K.바르트의 종말론, 바르트와 D.본회퍼 이후의 정치신학, 가톨릭 신학자 K.라너의 신학 등 유럽의 20세기 신학사조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강조된 역사 ·사회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즉 예언자적 심판의 선포와 하느님의 의(義)의 종말적 성취로서의 신약성서적 하느님 나라의 개념은 그대로 해방신학의 주제가 된다. 그러나 해방신학에 있어서는 그 주제가 라틴아메리카, 또는 제3세계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직결되어 해석된다는 점에서 유럽 신학의 전통과는 다른 특수하고 새로운 신학적 과제를 제시한다. 해방신학은 대체로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신학자들인 G.구티에레스, J.세운토, H.아스만, H.카라마 외에도 많은 가톨릭 신학자가 내세우고 있으며, J.보니노, R.알베스와 같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도 그 대변자들이다.

해방신학은 유럽 및 미국의 신학자와 교계 지도자가 제3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대다수 신학자는 해방신학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의 연관성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 비판은 신앙과 이데올로기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입장은 신앙의 초(超)이데올로기적 근거, 즉 하느님의 종말적 구원 또는 하느님 나라를 지시하면서도 그같은 비판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대체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바탕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논박한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종말적 신앙은 잘못된 역사·사회의 변혁을 위한 실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내세운다.

해방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와 그 이후의 가톨릭 신학의 동향 및 사회이론을 그들의 방향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그 회의는 현대의 세계상황, 곧 빈곤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에 종속되는 문제를 논의했으며, 교회는 인류·역사와의 유대성에 따라 마땅히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인간공동체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해방신학자들은 가톨릭의 이러한 동향을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포착하고 있다.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열린 로마 가톨릭 주교회의는 그에 힘입어 사회·경제적 해방의 문제를 바티칸 회의에서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었는데, 이것이 바로 해방신학의 등장에 있어 중요한 고비를 이루면서 그 이후 해방신학은 활발하게 논의·전개되어 갔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역사적 배경은 그렇게 짧은 것만은 아니다. 16세기 이래 유럽의 제국주의·식민주의하에서의 피억압 경험과, 현대의 신식민주의적 경제구조하에서의 좌절이 해방신학의 역사·사회적 현실이며, 또한 서유럽 신학 전통이 언어적 도구나 매체로서 사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모든 역사·사회적인 신학적 요인들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현실문제에 접합되면서 마침내 새로운 해방신학이 대두한 것이다.  

두산백과사전

 


 

 해방신학의 배경

남미의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라는 억압의 상황에서 태어난 신학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남미는 극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및 그로 인한 엄청난 빈부 격차, 구조화된 실업과 문맹으로 특정지어진다. 남미의 비참한 상황은 서구세계의 식민지 개척으로 시작되었다. 그 선두주자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남미의 원주민들을 대량학살하고 그 전통문화를 파괴하였다. 그 뒤 이 지역은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미국의 신식민주의 정책(neo-colonial policy)에 의해 철저한 약탈과 경제적인 예속을 경험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남미의 국가들은 명목상으로는 독립국가가 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원조도 받았으나 그것이 이 지역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남미는 라틴 아메리카 내 소수의 군부 관료집단(Military Oligarchies)을 앞세운 서구국가들 특히 미국에 철저히 예속되어 버렸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내세운 근대의 진보, 자유, 평등, 기회와 같은 모토들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에는 약탈, 가난, 억압, 불평등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이런 억압의 상황 속에서 성서가 말하는 해방과 자유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가운데 생겨난 ‘상황적인’신학이다.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은 여러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첫 번째 영향은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회적 가르침이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 속에서 1968년 라틴 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 교회 주교들은 콜롬비아의 메델린(Medelin)에서 열린 제 2차 남미 주교회의에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히 여기고 구조화된 사회악을 비판하며 극복하는데 있다고 선언하였다. 해방 신학은 이 메델린 회의에서 1979년 푸에블라의 제3차 남미 주교회의까지의 약 11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해방신학의 형성에 영항을 준 두 번째 요인으로는 1960년대이후 서독에서 일어난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을 들 수 있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요한 뱁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 도로테 죌레(Dorothe Soell)등 제2차 세계대전을 몸으로 겪은 젊은 신학자들은 나치 독일의 등장과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의 교회의 신학이 복음을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이해해서 정치적인 반동주의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기독교 복음의 정치적 책임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중 몰트만은 예수가 선언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요인을 그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적 선택과 결단을 하는 것 역시 신앙의 본질이라고 외쳤다. 또한 메츠는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로마의 억압구조에 대한 예언자적인 항거의 죽음, 곧 정치적 죽음이었고 이 죽음은 불의한 정치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기억(The Dangerous Memory of the Death of Jesus Christ)이며 교회는 이 위험한 기억에 의해 형성되고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의 삶은 고난당하는 이들의 연대 속에서 잘못된 정치구조에 대한 비판과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정치적 삶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해방신학은 이런 독일의 정치신학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그들의 상황 안에서 더욱 철저화 시켰다.

해방신학의 형성에 영향을 준 세 번째 주요한 요인으로 칼 맑스의 사상을 들 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에서 소외되어 비인간화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는 부의 균등한 분배로 인한 인간적 삶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현실변혁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된 힘에 의한 혁명 외에는 없다고 가르쳤다. 해방신학자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후원에 의한 개발 독재의 시기가 더 큰 빈부 격차를 낳은 것을 보면서 맑스의 이런 사회비판을 받아들인다. 곧 이들은 남미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 ․ 경제적인 수탈을 극복하는 길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의 총체적 혁명 곧 해방의 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맑스주의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모색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일 뿐 다른 부분―가령 무신론―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해방신학의 주요 신학자들로는 구스따보 구띠에레즈, 얀 소브리노(Jon Sobrino),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Ignatio Ellacuria), 호세 꼼블린(José Comblin)등을 들 수 있다.


해방신학의 특징

해방신학이 가진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구조적인 가난 속에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형성된 신학이라는 데 있다. 해방신학은 몇 명의 신학자들이나 해방을 지향하는 일부 혁명집단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남미의 고난 받는 가난한 민중들의 신앙에 근거한 절망과 희망에서 태어났고 이 점에서 여유로운 삶에서 형성된 서구신학과 근본적으로 구분이 된다.

둘째 해방신학은 사회변혁(해방)을 지향하는 신학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자신의 주된 사명을 복음 전파로 인한 죄의 회심과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고 생각해왔다. 해방신학 역시 이런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적 과제를 사회 정의를 이루어 억눌리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데 둔다. 그 이유는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에서 우선적이고 긴급한 것이 사회정의와 평등의 실현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해방신학은 열정적이고 예언자적이고 종말론적인 신학이다. 서구 신학은 신학의 가치를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보편타당성을 가지는가 하는 점에서 찾았다. 하지만 해방신학은 신학의 가치를 그것이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키고 평등과 자유를 가져오는가 하는 데서 찾는다. 따라서 이 신학은 논리적, 교리적,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열정적이며 예언자적이다. 그것은 현실을 고발하는 데 있어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사회비판적 언어를, 그 최종적 목표를 말하는 데서는 유토피아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실상 해방신학이 비판을 받고, 그 주요 대변자들이 가택에 연금되고 통신과 저작의 제한을 받으며 투옥되고 심지어 학살까지 당했던 주된 이유는 그들이 복음의 빛으로 주어진 현실을 계속해서 비판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로 해방신학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당파성의 신학을 전개한다. 해방신학자들에 의하면 남미의 상황에서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의 중간에 중립적인 자세로 서 있을 수 없고,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 곧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편애(Preference Option for the poor)를 그 실천의 중앙으로 삼는다. 그런데 해방신학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이유는 단지 남미의 상황 때문만은 아니며, 그것이 성서의 정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위대한 성서적 정신이다. 성서 전체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사회적 약자와 억눌리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시며 편애하신다는 기사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혹은 가난한 사람 편을 드는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해방신학은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의 편에 우선적으로 계시고 그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시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로 이해할 있다고 한다.


해방신학의 죄, 구원, 그리스도 이해

해방신학은 죄를 사회구조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한다. 즉 해방신학에 있어서 죄는 우선적으로 사회정치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악의 힘을 가리킨다. 해방신학의 이런 죄 이해의 특징은 죄의 개인성과 보편성을 강조해온 서구신학의 죄 이해와 비교해 볼 때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해방신학은 그리스도를 무엇보다 먼저 총체적 구원, 곧 해방을 가져온 분으로 이해한다. 특히 이 신학인 예수께서 선언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해방과 자유의 나라였음에 주목한다. 엘살바도르의 예수회 해방신학자 얀 소브리노(Jon Sobrino)에 의하면 예수는 가난한 민중들과 같이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으며, 하나님나라는 그들 위에 먼저 임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런 삶과 메시지는 당시의 지배계급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이 점에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예상된 귀결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림으로써 그가 전한 자유와 해방의 나라가 옳은 것임을 공적으로 승인하셨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최후의 승리를 기대하면서 사회적 부정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에서 해방신학은 교회를 하나님나라를 선언하신 예수를 뒤따르는 공동체이자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공동체로 이해한다. 곧 해방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해방신학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남미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의 바닥 공동체(Base Community)로 나타난다고 보고 이런 관점에 근거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질서적인 교회 이해를 비판한다. 즉, 대부분 가톨릭 신부들인 해방신학자들은 가톨릭교회의 계급질서적인 교회이해를 비판하면서, 교회를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의 영이 깃든 곳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이해한다.

출처: 살림지식총서《현대신학이야기》해방신학

 


 

해방신학 비판

 

현대신학자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의 소망신학이 북미에선 흑인신학, 남미에선 해방신학, 유럽에선 섹스신학, 한국에선 민중신학으로 발전하였다. 해방신학의 형성과 특징, 비성경적인 문제점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몰트만 이전의 신학 흐름

19세기 슐라이어막허는 독일의 계몽사상 이성주의를 배격하고 감정신학을 창건하였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만이 진리의 표준이 될 수 없고, 인간의 감정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에게는 직관(直觀, Intuition)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데 이 직관으로 진리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첫인상도 직관이며, 파스칼도 '직관은 진리다'라고 하였습니다. 슐라이어막허는 자연신론자들이 추방한 하나님을 감정과 직관으로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스위스의 칼 바르트는 독일의 슐라이어막허를 인본주의라며 공격한다다. 슐라이어막허가 주장하는 종교적 직관은 인간의 직관 내지는 감정인데 진리의 표준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세계가 상이한 근원에서 출발한다는 차원신학을 수립한다. 즉 하나님은 절대무한의 초월자이고 인간은 상대유한의 구속자이며 양자 사이엔 왕래불가의 간극이 있어서 일반계시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신학에 의해 격하된 신본주의 신학을 바르트가 다시 회복시킴으로 정통주의자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절대무한의 특별계시가 성경에 기록될 때 인간의 유한한 말과 종이를 이용하면서 유한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유한은 오류를 의미하고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자기모순에 빠져 자신이 만든 신학마자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바르트가 등장한지 30년만에 루돌프 불트만이 나타나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비판한다. 불트만은 기독교를 논하려면 성경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바르트는 성경을 불신함으로 기독교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한다. 불트만은 성경을 신학이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만 곧 자유주의로 변질된다. 그는 성경의 교훈적인 부분은 신뢰할 수 있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처녀탄생, 오병이어, 수상보행 등은 신빙성이 없는 신화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불트만의 제자 캐제만이 스승의 잘못을 냉정히 비판한다. 불트만은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 존재를 의심했지만 캐제만은 역사적으로 불분명한 예수님의 교훈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캐제만은 예수님의 역사신학을 연구해 예수님이 역사적 존재이고 그의 교훈도 믿을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강조하다 보니 지상의 형이하학적 신학으로 퇴보한다. 캐제만은 하나님의 역사를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고, 사회참여와 정치참여 의식은 해방신학을 낳게 된다.

2차대전으로 수천만명의 사상자가 생기자 신학자들은 과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개탄한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 정의의 하나님을 찾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신(死神)신학이 출현하게 된다. 본훼퍼, 로빈슨, 알티저 같은 사신신학자들은 전쟁의 공포와 히틀러의 횡포를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이 이 땅에서 죽어서 불의가 성행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죽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교회에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참혹한 세상에 참여해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신신학의 사회참여는 정치참여로 발전해 목사가 정치참여를 하는 것은 의무라고 한다.

사신신학의 사회참여는 인간을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세속화 신학으로 발전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뷰랜, 칵스, 폴리처 등 세속화 신학자들은 주장한다. 사회가 교회가 되고 인간이 하나님이 된 세속화신학은 실용주의를 강조한다.

 

2. 위르겐 몰트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세속화신학은 위르겐 몰트만에 의해 현재 종말을 성취하려는 종말신학으로 발전한다. 종말신학은 소망신학으로, 소망신학은 정치신학으로, 정치신학은 해방신학으로 발전한다. 몰트만은 2차대전 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다 영군군에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있다 종전과 함께 석방된다. 이때 그는 신학을 할 결심을 하고 독일로 귀국하여 신학교에 입학한다. 몰트만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해 바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 종말신학

몰트만은 전통적으로 종말론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전쟁과 대재앙과 영원한 심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막1:15 말씀하시기를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니라. 

눅11:20 그러나 만일 내가 하나님의 손길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한 것이 분명하도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종말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이미 도래했고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자 교회는 점점 재림을 포기하게 되었다. 몰트만은 신학의 가장자리로 물려난 종말신학을 다시 신학의 중심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신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종말이 예수와 함께 시작되었고, 새하늘과 새땅의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고 간주한다. 예수재림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선취된 사건이라며 현실에서 지상천국을 만들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마음의 영적천국이나 미래의 영원한 내세천국도 부인하게 된다.

 

b) 소망신학

몰트만의 종말신학은 진행중에 있는 미완성품이므로 이것을 충족시키려면 새로운 신앙이 요구된다. 신앙이란 약속된 세계에 대한 동경을 의미하고, 이러한 추구는 새로운 나라가 어두운 세상에서 완성되길 희망하는 소망이다. 현재 속으로 오셔서 새로운 소망을 준다는 점에서 신은 소망의 하나님이 된다. 소망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고, 소망은 사랑의 원동력이다.

주어진 세계와 타협할 수 없고 새로운 세계를 위해 고난을 시작하는 것이 소망신학의 사명이다. 현세의 모순을 발견하고 변화를 요구함으로써 세상과의 평화는 무너진다. 소망신학은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이상을 실현시켜 미래 신의 통치를 선취시킨다. 이것이 소망신학의 의무이며, 소망신학은 정치신학으로 발전한다.

 

c) 정치신학

몰트만의 정치신학은 정치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화 하는 현세의 제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비판과 개혁을 하지는 것이다. 소수의 부유층이 다수의 빈곤층을 비인간화 시키는 물질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선 정치신학이 개입해야 한다.

 

d) 해방신학

몰트만은 피지배계급의 힘을 동원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눌린 자들의 해방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해방신학이다. 그가 생각하는 해방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 해방이다. 노동의 결과인 소득을 균일하게 분배해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자본가와 생산자가 경제적 힘을 공동으로 관리할 때 이러한 운영이 가능하다.

둘째 정치적 해방이다. 정치적 독점으로 억압이 있으면 그 사회는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독재를 제거하고 민주주의 정권을 세워야 한다.

셋째 문화적 해방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종적, 민족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차별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넷째 자연적 해방이다. 자연이 없이 인간은 살 수 없으므로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지 말고 보호해야 한다

 

3. 몰트만 신학의 파생

a) 흑인신학

몰트만이 주장한 인종차별에서 해방은 미국 흑인들을 자극해 흑인의 인종적 해방을 추구하는 흑인신학을 탄생시킨다. 흑인신학자들은 모세가 흑인 여인 십보라와 결혼했듯이 많은 성경 속 인물이 흑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노예제도를 인정한 바울을 배격하고 예수 사상으로 흑인해방운동을 일으켜 흑인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 남미의 해방신학

몰트만의 해방신학은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남미에서 큰 호흥을 얻는다. 남미의 빈부격차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의한 것이므로 해방신학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남미는 외국자본이 국내산업을 억제하고 수탈해 점점 더 가난해지는 상황이었다. 남미는 원료공급원이자 값 싼 노동력의 공급원이고 고가의 공산품을 수입했다.

남미의 국가별 원자재는 아르헨티나는 옥수수와 고기, 브라질은 커피, 칠레는 초석과 구리, 중미는 바나나, 쿠바는 설탕, 베네주엘라는 석유로 미국과 유럽에 싼값에 수출되었다. 값싼 원자재와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고가의 제품으로 현지주민들에게 팔렸다. 남미의 교회도 원주민 편을 들지 않고 자본가의 편에 서 학대와 착취를 정당화하였다. 남미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해방신학이 수입되자 순식간에 남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남미가 해방신학을 받아들이자 로마 카톨릭도 정의구현 차원에서 해방신학을 찬양하고 사제들에 의해 전파된다. 로마 교황 요한 23세는 1963년 '빈부의 차이는 없어야 한다'고 선언해 해방신학을 자극한다. 교황의 칙서는 바티칸 제2공회로 연결돼 해방신학을 인준한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해방신학을 반대한다. 1968년 남미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로마 주교들이 모여 2차 주교단 회의를 열고 해방신학에 대한 정식 찬동결의를 하였다.

로마교에 이어 남미의 개신교도 해방신학을 받아들였는데 1972년 칠레 산디아고에서 1차 남미 기독교인 사회주의 대회를 개최하고 다음 두가지를 결의한다. 첫째 해방신학에 적극 참여한다. 둘째 이를 결행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와 동맹을 맺는다. 해방신학은 공산주의와 내용이 거의 같기 때문에 함께 회동하고 교류한다.

1973년 태국 방콕에서 WCC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남미의 해방신학이 소개되어 큰 호흥을 얻고 다음 결의문을 채택한다. 첫째 구원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경제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둘째 구원은 사람이 사람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셋째 구원은 사람을 소외시키는데 반대한다. 구원은 개인생활의 절망에 반대하여 희망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WCC 대회가 폐막된 후 해방신학은 용기를 얻어 더 활발히 활동한다. 기독교의 중심사상은 십자가 사상이나 WCC는 이를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 투쟁에 전력을 기울인다. 몰트만은 내한하여 영락교회에서 강론할 때 "나는 십자가 구속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의 뜻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연적 절망적 투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몰트만의 신학은 합법적 투쟁을 실천방법으로 채택하였으나 성공률이 약함으로 실천력이 강한 공산주의에 접근을 시도한다. 공산주의는 무력으로 자본가를 축출하지만 몰트만은 정치적 협상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남미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와 동맹을 체결하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마르크스 이론이 남미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이론의 설득력이 강하고, 둘째 마르크스주의만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며, 셋째 마르크스주의가 해방성취방안 중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출애굽사건을 해방신학의 주요모델로 이용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억압에서 벗어났듯이 억눌린 자들이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출애굽사건이 영적인 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상징적 사건임을 간과한다. 몰트만은 창세기에서 사람이 땅을 지배하라는 말씀도 정치에 참여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몰트만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인간을 대하는 것은 신을 대면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므로 가난을 제거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몰트만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질서 있는 투쟁을 제시한다. 해방신학을 통해 억눌린 자들에게 불합리성을 이해시켜 사상을 변화시킨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시위나 파업을 통해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남미의 해방신학은 몰트만의 비폭력노선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좌경신학으로 기운다.

해방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성전이고, 성전 밖 세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곧 세상이다.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사회다. 억눌린 자들을 건져내는 것이 구원이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구속이다. 해방신학은 개인구원보다 사회구원을 중시한다.

해방신학의 주체는 억눌린 가난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존엄성과 해방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해방신학의 주역이 되야한다. 교회가 의식교육을 통해 이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해방신학의 목적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독재로부터 자유케 하며 평등을 보장함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세상에 이상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c) 섹스신학

몰트만의 해방신학은 인간이 성적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파생시킵니다. 마음만 맞으면 누구와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고, 때와 장소도 무관하다고 한다. 하나님의 계명이나 인간의 양심은 고물이고, 상황에 맞게 성교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성해방운동은 나체주의자를 낳았고, 나체주의자들은 방종한 집단생활과 부부교환을 감행한다. 마지막으로 성해방은 동성연애로까지 타락한다.

 

d) 민중신학

몰트만의 해방신학은 한국의 독재체제 하에서 민중신학으로 발전한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억압에서 자유를 얻으려는 희망에서 민중신학이 형성된다. 1973년 '기독인 선언'이 발표되고, 다음 세가지 결의문을 채택한다. 첫째 신은 고난을 겪는 억눌린 자들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라 명한다. 둘째 그리스도가 멸시받는 자들과 함께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셋째 성령은 새로운 사회의 창조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정치적 개조를 위한 싸울 것을 명령한다.

1979년 서울에서 '민중에 관한 신학적 성취'라는 주제로 모여 민중신학이 시작된다. 로마 카톨릭에선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문국현 신부나 정의구현사제단이 활동한다. 명동성당이 노조의 분규나 시위의 근거지가 된다.

 

4. 해방신학 비판

a) 몰트만의 종말신학 비판

막1:15 말씀하시기를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니라. 

몰트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을 현세에 종말에 도래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시대의 종말과 신약시대의 시작을 의미하지 지구적 종말과 이상세계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과 왔다는 것은 영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상 정치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복음으로 먼저 심령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켜야지, 사회를 변화시켜도 사람의 악한 본성은 변화되지 않는다.

또한 몰트만은 미래의 일이 현재 선취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래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은 기다려야 이루어지지 인간이 억지로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현세에 복을 받아 잘사는 기복신앙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성경적 진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벗어나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성화돼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땅의 진정한 정의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악인을 심판하신 후에 이루어진다.

 

b) 몰트만의 소망신학 비판

몰트만은 미래에 바라는 것인 소망을 선취해 현재화 하였다. 그러나 현실화된 것을 소망하는 것은 모순이다. 몰트만에겐 미래는 없고 현재만 있는 것이다. 미래의 천국을 현세에 실현하자는 것이 소망신학이다.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과 정치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나 진정한 이상세계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

몰트만에게 십자가 고난은 정치적 투쟁을 의미한다. 시위와 파업 등으로 피지배계급의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정신은 희생과 용서와 사랑이다. 소망신학은 불공평한 현세를 개혁하기 위해 투쟁하므로 세상의 평화도 깨질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같이 계급적 투쟁만 강조하면 폭력과 갈등과 혼란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복음은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것을 가르친다.

 

c) 정치신학에 대한 비판

몰트만의 정치신학은 부당한 사회권력과 불평등을 비판하고 개혁하자는 것이다. 서민층에게 사회적 모순을 교육하고 항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권유신학이라고도 한다. 몰트만은 사회개혁에 직접 나서지 않고 의식화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몰트만은 학생시위와 노사분규를 조장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d) 해방신학에 대한 비판

해방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창설하면서 사용한 용어로 몰트만은 공산당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해방신학의 이론은 공산주의 사상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성경(신 15:11)은 빈부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 내에서도 고위관료와 노동자 사이에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해방신학은 공사주의와는 달리 무력투쟁이 아닌 시위와 파업 등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적이다. 해방신학은 그 출발이 이땅에 하나님은 죽었다는 사신신학에서 출발했으므로 인간이 신의 지위를 대신해서 인간의 힘으로 만드는 이상세계를 지향한다. 그러나 먼저 인간의 타락한 내면을 거듭남으로 정화하지 않는 한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하다. 몰트만의 십자가 구속도 해방신학을 위한 것이라며 복음을 교묘히 이용한다.

해방신학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지만 성경에서는 가난을 죄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해방신학은 가난이 인간탐욕의 결과이고 자본주의가 빚어낸 사회악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야고보서에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노임을 착취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성경에 임금을 더 받기 위해 투쟁하란 구절은 없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순리다.

눅6:20 그때 주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임이요,  [한글KJV]

성경은 가난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서 복이 있다 했고, 가난해서 비참하게 죽은 나사로도 천국에 갔다. 이 세상에서 재물이 많다는 것은 투기나 사기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구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쉽지만 부한 자들은 재물을 의지하기 쉽다.

롬6:18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  [한글KJV]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해방이란 가난에서 해방이 아니라 죄에서 해방이다. 이는 육적인 본성을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벗고 영적인 거룩함을 가질 때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제거되지 않는 한 또다른 문제와 불평등이 생겨난다. 예수님 말씀대로 부자가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를 돕고 서로를 위하여 섬긴다면 진정한 이상세계가 될 것이다.

몰트만은 해방신학의 성경적 근거로 출애굽사건을 드는데 정치 경제 문화의 탈출로 해석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억압에서 탈출해 가나안 땅에 도착했듯이 현실을 개혁해 이상세계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은 육적으로 더 잘 사는 길이 아니라 사막에서 고생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도중에 우상숭배하거나 불순종하면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았다.

 

* 참고도서: 해방신학의 실상과 비판 (한춘근, 엘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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