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의 힘 : 화교자본


지난해 베이징(北京)의 명동인 왕푸징(王府井)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중충하던 거리가 초현대식으로 말끔하게 단장됐다. 베이징의 백화점 중 가장 오래된 베이징시 바이훠다이러우(百貨大樓)도 2년 간의 보수공사 끝에 새로 문을 열었다. 그 옆으로는 신둥안(新東安)과 스두(世都) 등 고급백화점들이 들어섰다. 초대형 복합건물인 둥팡광창(東方廣場)도 왕푸징의 새로운 명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건물은 연건평 90만㎡에 8개의 오피스빌딩과 9만㎡의 쇼핑센터, 5성급 호텔과 2개 블록의 고급아파트로 이뤄졌다. 이제 왕푸징은 베이징의 최고급쇼핑가로 탈바꿈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말 새로 단장된 왕푸징을 중국 건국 50년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거리로 소개했다.

왕푸징이 초현대식 거리로 탈바꿈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화교자본이다.
둥팡광창은 홍콩 청콩(長江)그룹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무려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한 야심작이다. 신둥안과 스두백화점 역시 화교자본으로 세워졌다.


▼ 20억달러 투자 부동산 개발 ▼

리카싱 회장은 또 베이징의 리두(麗都)호텔, 베이징 교외의 고급 별장단지 톈주위안(天竺園)을 조성했다. 상하이(上海) 난징(南京)로의 메이룽전(梅龍鎭)빌딩과 푸둥(浦東)지구의 화무(花木) 빌라단지도 그의 작품이다. 충칭(重慶)의 메트로폴리탄플라자를 비롯해 광저우(廣州) 푸저우(福州) 칭다오(靑島)와 싼시(陝西)성 둥관(東關) 등지에도 대규모 부동산을 개발했다.

홍콩의 또다른 재벌인 호프웰그룹의 고든 우 회장은 외국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망설이던 80년대 발전소 도로건설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외국기업들의 중국투자 불안심리를 씻어주었다. 그가 80년대 광둥(廣東)성에 건설한 두 개의 발전소는 현재 광둥성 공급 전력의 3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93년에는 CEPA라는 자회사도 만들어 광시(廣西)성과 네이멍구(內蒙古) 등지에 대한 발전소 건설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에 나선 지난 20여년간 연평균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해온 데는 화교자본의 투자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개혁 개방 이래 상하이에 유치된 외자의 70%가 화교자본이다. 상하이 내 각 화교단체가 운영하는 기업만도 100여개를 넘는다. 또 이들은 시정부 당국과 매년 2, 3차례 연석회의를 갖고 향후 발전전략을 논의하는 열성도 보이고 있다.

전세계 화교는 약 6000만명.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 퍼져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전세계 화교가 보유한 자금규모는 2000억∼3000억달러.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 화교의 86%가 모여 사는 동남아지역에서는 화교들이 이 지역 상권의 50∼80%, 대외무역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화교들은 음식점 세탁소 잡화점 등 전통적인 업종에서 벗어나 전자 화학 정밀기기 등 첨단기술분야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연간 1억달러 이상의 식용유를 수출하는 ‘브라질 대두(大豆)왕’ 린쉰밍(林訓明)을 비롯해 500개 이상의 화교기업이 지역경제를 석권해가고 있다.

해운분야에서 화교들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현재 화교가 보유한 선박 총t수는 무려 5000만t. 세계 전체의 12%를 차지한다. 세계 7대 선박왕 가운데 2명이 화교다. 이같은 화교의 힘은 21세기 중국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매년 화상(華商)대회를 개최해 화교기업의 중국진출에 각종 특혜를 주고 있다.

또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산하에 각기 화교업무를 담당하는 교무(僑務)판공실이나 화교위원회를 설치해 화교들의 국내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각 성과 시에서도 이중 삼중의 화교담당조직을 만들어 이들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 전세계자본 3000억달러 추정 ▼

중국은 세기가 바뀌기전인 지난해 12월31일 밤 베이징에 만든 밀레니엄 행사물 ‘중화스지탄(中華世紀壇)’에서 21세기를 알리는 ‘세기의 종’을 타종했다. 중국 CCTV는 전세계 화교들의 밀레니엄 맞이를 현장중계했다. 상하이와 광둥성 산둥(山東)성 등도 세계 각지의 화교대표 수천명을 초청해 행사를 치렀다. 화교들과의 결속을 통해 21세기를 중국과 중화민족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출처: 동아일보 2000.2.15>
화상(華商) 네트워크


중국이 뭉치고 있다. 13억 중국인과 3000만 화교들이 자본주의 깃발 아래 손을 잡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화교를 통해「방대한 자본」을 얻고, 화교들은 중국 대륙에서「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 160여년의 화교 이민사에서 지금처럼 고국을 향한 회귀 열기가 뜨거운 때는 없었다. 지난 9월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6차 화상(화교상인)대회. 중국 본토에서 열린 첫 화상 모임인 이날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화상 4800여명이 운집했다. 외신기자들도 대거 몰려들었다.「기회의 땅」중국과 화교 자본이 본격적으로 결합하는 상징적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해외 이민과 그 자손들이 조국에 공헌해주어야 한다”며 “중국이라는 뜨거운 땅덩어리에서 더 많은 발전의 기회를 찾기 바란다”고 본토 투자를 호소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세계 화교자본은 대략 3조3500억달러(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 추정)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화상들은 전 세계 130여개국에「실핏줄」처럼 퍼져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화상들의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동남아 경제는 사실상 화상들이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교들은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에서 인구 구성비로는 소수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이 소속 국가 경제력의 50~90%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 경제가 바로 화교권 경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화교들은 동남아 지역에서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대통령,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와 고촉통 현 싱가포르 총리 등이 대표적인 화교출신 정치인들이다.

화교 자본의 중국 이동은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이 가시화된 99년부터 큰 물결을 이루기 시작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을 2~3년 사이에 세계 선진도시로 탈바꿈 시킨 것도 화교자본의 힘이다.

천안문 오른편의 ‘아시아 최대 복합 빌딩군’이라는 동방플라자는 홍콩 재벌 리자청(李嘉誠)의 작품이다. 맞은편에 하늘을 찌르는 선훙카이 빌딩도 홍콩의 부동산재벌 궈빙샹(郭炳湘) 형제가 투자한 것이다.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안 대로변의 웬만한 고층빌딩이 거의 화상자본으로 건설되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중국 기간산업에도 화교자본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대만 화상 왕융칭이 이끄는 호모사 플라스틱은 중국 쑤저우(蘇州)에 70억 달러 규모의 대단위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리자청의 허치슨 황포아 그룹은 상하이 등 중국 9개 도시에서 항만건설 및 관리사업에 수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내년에는 종합병원 건설에 4억3000만 달러를 투자, 의료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그동안 대만•홍콩에 비해 중국 진출에 소극적이던 싱가포르, 필리핀 지역의 화상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화상의 1~3위(시가총액 기준)를 점하고 있는 화차오(華僑)은행, 다화(大華)은행, 화롄(華聯)은행이 최근 베이징에 나란히 첫 지점을 개설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해외자본이 중국에 직접 투자한 407억달러 가운데 50~60%를 화교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교들이 동남아에서 벌여놓은 기존 사업들을 철수하고 속속 중국으로 옮겨감에 따라 동남아지역 산업이 거덜나고 있다는 경계론이 비등할 정도다.

중국으로 몰리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다. 사람도 급속히 움직이고 있다. 상하이와 인근 장쑤성의 공업지대를 합친「대상하이」지역에는 줄잡아 30만명의 대만인이 거주하고 있다. 상하이 구베이(古北) 지역에는 아예 ‘대만촌’이 생겨났다. 대만기업들이 최근 1~2년 동안 대거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이를 따라 조국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해외 화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화교 사회에서도 요즘 중국 이민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상하이어 강좌는 필수과목이다. 이 같은 중국 귀환 열기를 화교들 스스로 ‘상하이열’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 일고 있는 화교들의 중국 귀환 행렬은 애국심이나 ‘수구초심’의 귀소 본능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청화대 경제관리학원 장쉬핑(姜旭平) 교수는 “미국경제 불황의 여파로 동남아 경제 침체가 길어지면서 탈출구로서 중국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의 WTO가입 확정이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제거함으로써 화교자본을 끌어들이는 촉진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화상 린원징 임씨집단 총재는 “동남아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화교들이 최근 중국 투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도 화교 유치에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자본과 그들의 막강한 「인재 풀(pool)」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대학 중국경제연구센터 하이웬 교수는 “중국 대륙과 전 세계 화교 네트워크가 힘을 합쳐 만들어낼 시너지 효과는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더 한층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3000만명 지연, 혈연, 학연으로 뭉쳐

동남아 각국 경제 50∼90% 장악


화교는 유대인과 함께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2대 파워 그룹이다. 중국인들의 해외 이민사는 멀리 당나라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규모 이민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1949년까지 해외로 이민을 간 중국인은 대략 100여만명을 헤아린다.
해외 이민 행렬은 중국 공산화로 한동안 끊겼다가 1978년 개혁•개방조치 이후 다시 이어졌다. 이렇게 전 세계로 퍼져나간 화교 수는 현재 3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중국어로 「방」이라 불리는 혈연과 지연을 통해 전 세계에 강력한 「화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화교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지만 그 중에서도 3분의 2가 동남아에 몰려있다. 세계 500대 화상 기업도 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7개국에 몰려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잡지 아주주간에 따르면, 세계 500대 화상기업들의 자산가치는 올 6월 말 현재 4,567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홍콩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은 화상기업들이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 홍콩의 최대기업인 허치슨과 장장실업의 소유주 리자청(李嘉誠), 싱가포르 최대은행인 화차오(華僑)은행의 리청웨이(李成偉), 말레이시아 최대은행인 퍼블릭 은행의 정훙뱌오(鄭鴻標), 태국 최대은행인 방콕은행의 전유한(陳有漢), 필리핀을 대표하는 재벌인 필리핀장거리전화 펑쩌룬(彭澤倫) 등이 대표적인 화교 기업들이다.

화교 이민 1세대는 후손에게 혈연과 지연을 유산으로 물려줬고, 부를 축적한 화교 후손들은 미국 명문대의 학연을 통해 네트워크를 보다 공고히 구축했다.

화교들이 지난 1969년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 폭동과 98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폭동과 같은 화교배척사건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경제의 지배권을 잃지 않은 것은 지•혈•학으로 연결된 단단한 네트워크의 힘 때문이다.

화교들은 몇 년 전부터 기업경영 방식에서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경영에서 전문경영 체제로 점차 전환하고, 주력업종도 부동산 중심에서 정보통신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버클리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80~98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설립된 1만1400개 IT(정보기술)기업 가운데 17%가 화교 소유였고, 지난해 실리콘 밸리가 뽑은 10대인물 중 4명이 화교였다. 특히 지난 95년 인터넷 검색포털 야후를 설립한 제리양(楊致遠)은 IT 방면의 화교 첨병을 대표하는 인물이다.